1933년, 나치 독일이 바우하우스를 ‘퇴폐적 예술’로 규정하며 학교가 폐쇄되자, 그 철학을 이끌던 인물들은 교육과 실험의 장을 찾아 미국으로 향했다.

발터 그로피우스와 마르셀 브로이어는 1937년 하버드 GSD에 합류해 바우하우스식 교육을 이식했고,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1938년 시카고 IIT 학장으로 초청되어 “Less is more”의 미학을 미국 건축 교육의 중심에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