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는 오랫동안 시각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흰 벽과 균질한 조명은 시선을 집중시키고, 침묵은 감상의 조건이 되었다. 미술비평가 브라이언 오도허티는 이를 ‘화이트큐브(White Cube)’라 명명하며, 갤러리가 중립적 공간이 아니라 시각 중심의 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쟈넷 카디프와 조지 밀러는 이 침묵을 깨뜨리며, 갤러리에 ‘소리’를 들여놓았다. 그들의 대표작 〈The Murder of Crows〉는 98대의 스피커로 채운 공간에서 ‘보는 것’과 ‘듣는 것’의 관계가 역전되는 순간을 그린다.
전시장 안에는 98대의 스피커가 벽과 의자, 스탠드 곳곳에 흩어져 있다. 중앙의 책상 위, 낡은 메가폰 스피커 하나에서 옅은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흘러나온다. 목소리는 꿈의 한 장면처럼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사이사이로 파도와 새의 울음, 현악 합주와 합창, 행진악단의 리듬이 교차한다. 약 30분간 진행된다.
〈The Murder of Crows〉는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는다. 전시될 때마다 스피커의 배치와 규모가 변하며, 공간 자체의 음향 구조에 맞게 재구성된다. 베를린의 Hamburger Bahnhof, 뉴욕 Park Avenue Armory, 헬싱키 Kiasma, 마드리드 Matadero 등에서 각기 다른 버전으로 선보였다. 카디프와 밀러는 소리를 단순히 듣는 대상이 아니라, 벽과 공기를 재구성하는 ‘조형적 재료’로 다룬다.